산타크로스,천사,악마,유니콘,도깨비, 마녀분들 주저마시고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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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이야기
roman de renard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8/30 00:07 | 트랙백
그에 관한 것이라면...






             Colin Firth..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8/25 11:12 | 트랙백
시/ 공초 오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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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8/09 23:20 | 트랙백
시/ 다화


 이수광의 차마시기[飮茶] 육언시(六言詩)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8/09 23:19 | 트랙백
기사주제/ 모성
 
                가임 여성에도 임산부 수준 보건혜택 추진



모성의 범위확대ㅡ
  
   출산율저하에 따른 철학적 물밑작업의 일환으로 모성'은 지고지순의 덕목이 되었다. 이에 법도 개정되었다.ㅋㅋ웃을일이다.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8/09 23:07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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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저의 블로그를 사랑해주신 '나 외 1명' 에게 감사드립니다.

산타크로스, 천사, 악마, 유니콘, 도깨비, 마녀분들께서 들러주시길 간절히
바랬지만은 그분들은 수줍음이 많으셔서 이만 저의 어린 가슴에 묻고
새로운 마음, 더 발랄한 단장으로 블로그의 새출발을 공언할까 합니다.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7/03 17:54 | ㅁ행복해져야하는일상 | 트랙백
므리 대그 ~♥
메리대구 공방전│딸들아, 아들들아, 모든 무대는 다 거룩한 것이다.
[2007-06-14 16:32]

명랑건전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의 세계

“직업 없이 노나?”
“… 놉니다”
그렇다. 메리와 대구는 그런 사람들이다. 직업도 없고, 재능도 없고, 보장된 미래도 없다. 번듯한 부모도, 타고난 운도, 심지어 자본에 대한 예의도 없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우습게도 꿈이란 게 있다. <풍운도사의 백팔번뇌> 1권, 그리고 또 2권의 저자인 무협소설 작가 강대구는 “낮에는 수퍼배달에 저녁엔 집필활동”을 하는 소박한 꿈을 꾸고, 수돗물로 배를 채울지언정 비싼 뮤지컬 티켓은 아낌없이 구입하는 배우지망생 황메리는 언젠가 <오페라의 유령>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꾸며 인근 공원, 학교 강당 등에서 매일 연습에 매진한다.

그러나 이들 앞에 세상은 냉정하고 혹독하다. ‘대박작가’ 대신 “아빠 회사 말아먹은 멍청한 작가새끼” 신세가 되어버린 청년과 오디션 7회 낙방에 “양치기만큼이나 고독한” 수퍼마켓 아르바이트, “호박, 빵!” 트럭용 홍보테이프, 삼류가수 코러스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차한 청춘의 삶을 이어가는 처녀. 그들이 어떤 미래의 꿈을 꾸던 간에, 이들의 현재는 누가 봐도 그저 구제불능의 ‘한심남녀’다.

명랑액션무협만화의 외투를 입은 스크루볼 코미디의 부활

유서를 쓰다가도 밥 먹으라는 엄마 말에 튀어나가는 징글징글한 삶의 의지로 가득 찬 여성, 메리여!

신성진의 인터넷소설 <한심남녀 공방전>을 원작으로 한 <메리대구 공방전>은 인기리에 방영된 <고맙습니다>후속으로 5월 16일 시작해 6월 14일 오늘밤 제 10회가 방영된다. 이제 겨우 중반을 넘긴 <메리대구 공방전>에는 사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피 말리는 ‘쩐의 전쟁’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동시간 시청률 최하위, 라는 가슴 아픈 현실을 목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떨어져만 가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메.대.공.의 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든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일단 한번 맛을 보면, 쉽게 벗어 날 수 없는 <메리대구 공방전>의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메리와 대구다.

명랑액션무협만화의 외투를 입은 스크루볼 코미디의 부활. <메리대구 공방전>의 두 남녀는 낯간지러운 사랑싸움이 아니라, 진짜 싸움을 한다. 피 말리는 고기판은 ‘죽음의 고스톱판’으로 이어지고, 이후 피자 대짜 한 판을 둘러싼 애미에비도 몰라볼 배신의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마찰은 멜로드라마 주인공들이 마주치고 만나고 싸우고 위로 받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예정된 수순 중 하나일 테지만, 메리와 대구의 ‘공방전’은 과정 그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만담과 무협의 경쾌한 핑퐁 한판!

“아이고, 저기저기 보름달 아니예~요?” 장소팔 없는 고춘자, 메리는 홀로 만담의 세계로 빠져들고 “무림의 사내들은 진심을 보이는데 익숙하지 않소” 소용녀 없는 양과, 대구는 홀로 무협의 세계를 유영하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런 만담체 대사와 무협체 대사가 오묘하게 소통되는 <메리대구 공방전>의 핑퐁 같은 세계는 거대한 운명, 비극적 사랑, 혹은 독한 사랑의 명대사에 경도된 한국 멜로드라마에 신선한 자극을 안겨준다.

또한 <연애시대>의 ‘지호’ 이후 좀처럼 몸에 맞는 옷을 찾지 못하고 있던 이하나는 비로소 맞춤옷을 입은 듯 브라운관 속을 횡대, 종대로 자유롭게 활보하고, 지현우는 ‘지PD’라는 훈훈한 꼬리표를 ‘대구’라는 꼬질꼬질한 이름표로 기꺼이 바꿔 달았다. 왕빛나의 꿈꾸는 말투는 철없는 부잣집 성형미인의 무게를 재수 없음보다는 귀여움 쪽으로 옮겨놓았고, ‘선도도진’ 이민우의 각 잡힌 등장은 <카이스트>의 이민우를 잊지 못하는 팬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귀환이다.

어떻게 보면 느슨해 보이는 이 드라마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허투루 소비되는 대사나 연출이 없다. 행간의 자유를 주고, 그것을 누구보다 알차게 채워 넣는 김인영 작가의 대본과 고동선 감독의 연출에는 메리와 황제수퍼 사장님만큼의 신뢰와 믿음이 오간다. 또한 많은 주, 조연 캐릭터들이 쉴새 없이 쏟아내는 몸 개그와 애드리브 역시 통제되지 못한 채 날뛰기 보다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허를 찌르는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가 아니다

사실 메리와 대구 그리고 소란에게는 전사가 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의 부모의 이야기다. 우악하고 독한 메리의 모친이 갑자기 여린 표정을 짓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오 솔레 미오>의 선율, 수선화의 향내와 함께 추억하는 ‘리끼박’(이영하)이다. “평생 그리워하기에 좋은” 그 남자는 30년 전 동방서커스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쳐보던 중 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오성자 여사(이혜숙)는 평생 그를 가슴에 묻은 채 살고 있다. 이렇듯 봉인 된 줄만 알았던 사건과 기억들은 죽은 줄만 알았던 리끼박의 의문스러운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30년 전 실연한 오성자를 거두어 결혼한 메리의 아빠 황도철(기주봉)은 옛 남자의 등장에 긴장하고, 30년 전 공중곡예 줄을 끊은 피에로, 그러나 이제는 권세가가 되어버린, 소란의 아빠 이세도(이기열)의 눈가는 더욱 “그늘지고 춥게” 변한다.

플래쉬백으로 등장하는 ‘동방서커스’의 풍경은 판타지와 비극, 상상력이 뒤섞인 팀 버튼의 그것과 닮아있다. 물론 리끼박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는 후반이 되어야 알게 되겠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 마음에 담아두어 자신을 때리지 마라”는 리끼박, 혹은 ‘풍운’의 전언은 당신의 등장이 단죄나, 복수를 위함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남산과 북촌에 사는 그들의 드라마

원작소설에서 ‘대구’라는 걸쭉한 지역 색을 버리고 이 드라마 제작진은 남산과 북촌의 한옥마을이라는 공간을 택했다. 이는 ‘1, 2회 해외촬영+마지막 회 해외촬영’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으로 자리잡은 미니시리즈 로케이션의 풋풋한 반전이다. 과거 서울의 중심이었던 사대문안의 사람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재개발과 뉴타운 건설 등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황제수퍼의 유통기한 지난 식빵처럼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있다. 춤바람 나서 가출한지 3년 된 마누라를 찾기 위해 전국 카바레를 돌다가 어느 순간 “뤼~둠감”이 온몸을 덮쳐버려 춤의 노예가 된 ‘화(ㅇ)제수퍼’ 사장 최황제와 그의 문제 많은 딸 최비단, 국가재산인 볼펜을 훔쳐오는 매우 소극적이고 점잖은 방식으로 국가에 반항하는 9급 공무원인 메리 아빠와 말보다는 손이 앞서고 금전관계에서는 핏줄도 없는 메리 엄마, 변강쇠 같은 남자를 꿈꾸지만 외롭게 장작질을 이어가는 통닭집 여사장 변강미등 대구와 메리를 둘러싼 혹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다양한 색깔의 병풍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 앞으로 나와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 동지여

“취직을 했어요? 그럼 이제… 동지가 아닌…건가?”
소란의 여동생 아문의 보디가드로 첫 출근 하던 날, 아침 운동 나온 대구를 만난 메리는 그의 취직 소식을 듣고 멍하니 이렇게 읊조린다. 메리에게 도진이 아니라 대구가 더 신경 쓰였던 이유, 대구에게 메리가 더 마음이 쓰였던 까닭, 그것은 단순히 남녀의 화학적 이끌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저 사람이 어쩌면 내 ‘동지’일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인지였다. 가난한 백수라는 사회적 처지가 아니라, 쿨 함을 강요하는 세상, 이 냉정한 강호에서 아직 꿈이라는 철 지난 가치를 믿는 아날로그적인 종족들이 서로를 식별하는 어떤 냄새일지도 모른다. “맨날 티격태격하면서도 왜 안면 트고 지내는지 알아? 바로 동병상련이기 때문이야”

<메리대구 공방전>은 메리와 함께 코러스 뛰는 여자(노현희)의 입을 빌어 이 드라마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심하게 흘린다. “무대는 다 똑같애, 모든 무대는 다 거룩한 거라구” 그렇게 이 드라마는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인생들을 향해, 오지 않은 다음 장을 걱정 하지 말라고, 너의 무대도 거룩한 것이라고, 지금 서 있는 이 장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현명한 노인처럼 다독인다.

어쩌면 “열정은 재능을 능가해! 언젠가 될꺼야!” 라는 메리와 대구의 외침은 순진함보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의 무지한 낙관보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자기세뇌다. 세월이 흘러 결국 그들의 열정은 재능을 능가하지 못 할 수도 있고, 영영 무엇도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지던 간에 그 시절, 메리와 대구가 함께 장작구이 통닭을 뜯고, 술에 취한 밤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하고, 더러운 담요를 덮어주고, 도라지와 파스를 나누고, 질투하고 사랑했던 사실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고된 시절을 함께 버텨준 것만으로 메리에게 대구는 대구에게 메리는 이미 잊을 수 없는 동지가 된 셈이다.

메리대구 공방전│딸들아, 아들들아, 모든 무대는 다 거룩한 것이다. 1 / 6
메리대구 공방전│지금 '가난의 미학' 을 말하다2 / 6
메리대구 공방전│“괜찮아, 나는 꿈이 있잖아” 하는 주인공이 좋다. 3 / 6
메리대구 공방전│남산이 들썩인다4 / 6
메리대구 공방전│‘메대공팬진’ 제1호5 / 6
메리대구 공방전│‘메대공팬진’ 그리고 또, 제2호6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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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은하 <매거진t> 편집장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6/18 14:19 | ㅁ사람들 | 트랙백
신_학_동-네
http://theology.co.kr/suggest/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6/04 13:30 | ㅁ링크 | 트랙백
신기한 그림
http://nemo.naver.com/NemoView.nhn?nemoid=43155&imageid=8

신기한 그림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6/01 00:33 | 트랙백
교_육과 평_등
교육·노동·의료 분야에 만연한 평등주의를 비판한다
不평등은 문제가 아니라 자연 상태이다

<월간조선>

기계적 평등주의

최근 교육·의료·노동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은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철도·전력·가스 등 公기업 노조의 파업과 轉學(전학) 파동, 서울에서 自立型 私立 학교의 좌절, 의료 大亂과 의료보험 재정 고갈 등은 동일한 이념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들이다. 이 사태들은 모두 강력한 정부 개입으로 발생하였으며, 그 배후에는 기계적 평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公益을 앞세워 사회의 여러 부분에 개입하고 통제하였다. 公기업과 국가 주도의 公교육은 무한히 자기 권한을 확장하려는 公권력의 소산이지만, 그 배후에는 강력한 평등주의가 뒷받침되고 있다. 평등주의는 같지 않은 것은 같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외부의 개입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기계적 평등주의는 정부의 강한 개입과 非효율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것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기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뒤늦게 정부가 자기 한계를 깨닫고 정부 주도로 公기업과 교육을 혁신하려고 하지만 당사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개혁은 좌초되고 있다. 물론 개혁 정책의 좌초 뒤에는 자기의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관료주의적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자율과 민영화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권한을 절대로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 부분에서 더욱 더 심하게 드러난다.

평등주의는 너무나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감히 도전하기 힘든 이념이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모든 것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평등주의의 이념은 실제로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평등주의는 노예 제도와 신분적 차별을 이 땅에서 몰아 내고 종교·이념·性別·연령·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법 앞에서 평등하게 대우받게 하였다. 그러나 평등주의의 이념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 무차별 적용될 때 그것의 폐해는 막대하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유와 평등의 갈등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평등한 대우를 받고 富와 교육과 의료 등 사회 경제적 財貨를 공정하게 분배받아야 한다. 그런데 평등하게 대우받고 공정하게 분배받는 것이 무엇인가? 같은 교통 법규를 위반한 사람들은 동일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하여 그를 달리 대우한다면 이것은 평등한 처사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태어난 집안이 다르고 신체적 조건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다. 누구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고, 누구는 음치로 태어날 수도 있다. 누구는 수학적 재능이 탁월하고 다른 사람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날 수도 있다. 이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 이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인가? 이들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은 正義에 어긋나는 것일까?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에 富를 평등하게 분배해야 하는가? 신약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같은 농장에서 같은 일을 다섯 시간 한 사람이나 여덟 시간 일한 사람이나 세 시간 일한 사람에게 모두 동일한 임금을 주는 것이 정의로운가?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나 단순 노동밖에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어야 하는가? 시험 성적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점수를 주어야 하는가? 특히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富는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가? 자유나 경제적 재화가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면, 이것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가라는 물음은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富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문제는 항상 철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 왔다.

근대 이후 서양에서 자유는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는 인식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는 주장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가치이지만 이 둘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 재화를 분배하려고 하면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은 대립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자유를 추구하면 평등이 손상되고, 평등을 추구하면 자유가 손상된다.

『노동에서 유래한 소득에 課稅하는 것은 강제노동과 같다』

평등주의자는 사람들 사이의 富의 분배가 더욱 더 평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중요하지,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사람들이 자유를 상실하고 국가에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公正주의자는 정부의 복지 정책이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번 사람으로부터 富를 빼앗아 그 돈을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는가에 상관없이 同一한 量의 富를 분배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同一한 분배는 일할 의욕을 줄어들게 하여 전체 생산량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만일 富의 總量(총량)을 늘리려고 한다면 그것을 개인들의 노력과 기여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아니라 자유라는 관점에서 평등주의에 반대할 수도 있다. 하버드大의 철학 교수 노직(Robert Nozick)은 자유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평등주의나 평등주의에 입각한 再분배 정책에 반대한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국가가 분배적 正義에 관여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再분배를 위한 정부의 개입은 재산의 자유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노직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강제 노동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다섯 시간의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과 다섯 시간 노동을 하여 얻은 대가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곧 『노동에서 유래한 소득에 課稅하는 것은 강제 노동과 같다』는 것이다. 분배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게 개인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 노직의 이러한 주장은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으로 더 많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사회주의적인 분배 원칙은 현실적으로 가난만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개인 기업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험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업가가 존재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는 직업 윤리·기업가 정신·위험에 도전하는 정신·신뢰·창조성을 포함한 人的 자본의 손실을 감당할 수가 없어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자유를 안전과 바꾼 것이 복지국가론

모험이나 노력이 성공을 거둘 때 그에 상응하는 代價가 없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사업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모험적인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성공을 거둔다면 그보다 많은 富를 획득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그렇게 한다. 성공한 기업가를 보고 너무 많은 돈을 벌었다고 비난하는 사회에서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이 꽃을 피울 수 없다. 기업가들이 새롭고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게 되면, 생산성은 높아지고, 가격은 내려간다. 이익은 기업가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평등주의에 입각한 복지 국가는 가난의 평등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위기를 초래하였다. 복지 국가는 개인의 책임감을 사라지게 하고 나태함을 길러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국가의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복지 국가의 임무는 시민들에게 그들은 더 이상 고전적인 의미의 시민이 아니라 국가 활동의 산물이며, 국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잘 발달한 복지 국가는 참호와 방벽으로 둘러싸여, 그 아래 몰려들어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에게 안전과 피난처를 제공하는 현대판 봉건 시대의 城이다』는 말은 복지국가論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이다.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획득한 자유를 안전과 바꾼 것이 복지국가론이었다. 나아가 세계화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과도한 복지 정책을 실시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단일 세계 시장이 형성된 후에 국가가 개입하여 복지 정책을 실시하게 되면 치열하게 국제적인 생존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에게 과중한 조세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세 부담이 높은 나라의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다른 나라로 옮겨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우리는 사회적 富를 전체적으로 높임으로써 가난한 사람의 생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지나치게 추구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사회적 풍토도 경계해야 한다.

마이클 노박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성공적인 사업으로 부자가 된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났다. 많은 사람이 귀족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일으킨 사업은 많은 사람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불평등은 문제가 아니라 자연 상태이다. 그러나 인간의 위엄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것은 하나의 인간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再분배가 아니라 어떤 수준에 있는 사람이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低소득층의 청소년을 위한 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교육을 통해 그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물건,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富,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 사회 문제는 아니다.』

평등주의 대신 「자유의 원리」 도입해야

노박의 지적처럼 再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국가는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左派들의 주장처럼 「평등」 때문에 그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품위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굶는 자에게는 식량을 제공해 주고, 병든 자에게는 치료를 해주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곧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절대 빈곤이 심각하면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과 적대감이 조성됨으로써 체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절대적 빈곤은 국가가 해결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절대 빈곤층이 많았던 시대에 사회가 불안해지고 농민 폭동이나 극단적인 노동 쟁의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 절대적 평등주의를 실현하려고 할 때 우리는 자유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주의는 우리의 교육·노동·의료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평등주의를 버리고 과감하게 「자유의 원리」를 도입할 때가 되었다.

「자유의 원리」는 「개인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발성」은 「자유의 원리」의 핵심이다.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가장 잘 아는 「최선의 판단자」이며,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이다. 개인이 자발성을 갖기 위해서는 他人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유의 원리」를 존중한다면 교육이나 의료에서도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국가는 極貧者들에게 최소한의 교육과 의료를 제공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우리의 교육이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에 「자유의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교육은 정부의 규제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하고, 교육 공급자의 필요가 아니라 수요자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획일성이 교육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개인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최소한의 공동 규범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公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자유의 원리를 중시한다고 해서 公교육의 필요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 평등주의가 지나치리만큼 만연하고 있다. 교육 평등주의자들은 교육을 통해 분배적 正義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지지한다. 이러한 철학은 교육의 下向 평준화를 초래하여 개인의 자기 발전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되고 있다. 우리의 교육이 기계적인 교육 평등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개인의 필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교육이 행해질 수 없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는 창조적인 다양한 인간을 키워낼 수가 없다. 교육 평등주의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국가는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더 좋은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교육 제도를 公교육 안에서 허용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私교육은 더욱 더 발전할 것이며, 교육 이민은 계속될 것이다.

최근에 발생한 轉學 파동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에 轉學 접수를 하기 위해 수백 명의 학부모들이 며칠 동안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지나친 열성을 비난해야 하는가? 교육 수요자의 욕구에 요지부동인 관료주의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교육 평등주의가 초래한 당연한 결과이다. 轉學 접수의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高校 평준화 정책이 초래한 公교육 붕괴와 학력 下向 평준화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획일성이 교육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천적으로 학교 선택권을 봉쇄한 高校 평준화 정책은 교육 현장에서 최소한의 다양성을 보장해 주었던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말살하고 모든 학교를 洞사무소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교육 정책은 불가피하게 표준화되어 획일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는 교육 운영권을 개별 학교와 지역 교육청에 돌려 주어야 한다. 정부 주도의 정책으로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국가개입주의를 몰아내자

많은 사람들이 「교육 25時」에 살고 있다는 절망감에서 빠져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교육도 사람의 일이니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에서 완전한 문제 해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하면 그 정책은 불가피하게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교육 문제를 살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高校 평준화 정책 수정과 기여 입학에 대한 논란도 평등주의에 입각한 高校 평준화 정책이 몰고 온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교육에서 평등주의를 그대로 두고 여러 가지 정책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入試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며 私교육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公교육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때, 私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교육에서 경쟁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교육에 대한 정부의 통제 뒤에는 다양성과 민간 자율성을 부정하고 평등을 이상화한 국민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평등을 많이 실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부 개입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평등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고 人爲的인 상태이다. 제3의 힘인 정부가 개입해야만 이러한 인위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평등에 대한 강한 집착은 획일성과 전체주의를 유발한다. 우리 교육 문제의 근원이 바로 교육 전체주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교육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기계적 평등주의와 국가 개입주의를 몰아내고 민간의 자율성을 확보할 때가 되었다. 모든 부분에서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될 때 개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申重燮 강원大 윤리교육과 교수(서양철학)
by 환상에대한감각 | 2007/05/26 15:55 | ㅁ민주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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