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건전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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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없이 노나?”
“… 놉니다”
그렇다. 메리와 대구는 그런 사람들이다. 직업도 없고, 재능도 없고, 보장된 미래도 없다. 번듯한 부모도, 타고난 운도, 심지어 자본에 대한 예의도 없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우습게도 꿈이란 게 있다. <풍운도사의 백팔번뇌> 1권, 그리고 또 2권의 저자인 무협소설 작가 강대구는 “낮에는 수퍼배달에 저녁엔 집필활동”을 하는 소박한 꿈을 꾸고, 수돗물로 배를 채울지언정 비싼 뮤지컬 티켓은 아낌없이 구입하는 배우지망생 황메리는 언젠가 <오페라의 유령>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꾸며 인근 공원, 학교 강당 등에서 매일 연습에 매진한다.
그러나 이들 앞에 세상은 냉정하고 혹독하다. ‘대박작가’ 대신 “아빠 회사 말아먹은 멍청한 작가새끼” 신세가 되어버린 청년과 오디션 7회 낙방에 “양치기만큼이나 고독한” 수퍼마켓 아르바이트, “호박, 빵!” 트럭용 홍보테이프, 삼류가수 코러스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차한 청춘의 삶을 이어가는 처녀. 그들이 어떤 미래의 꿈을 꾸던 간에, 이들의 현재는 누가 봐도 그저 구제불능의 ‘한심남녀’다.
명랑액션무협만화의 외투를 입은 스크루볼 코미디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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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진의 인터넷소설 <한심남녀 공방전>을 원작으로 한 <메리대구 공방전>은 인기리에 방영된 <고맙습니다>후속으로 5월 16일 시작해 6월 14일 오늘밤 제 10회가 방영된다. 이제 겨우 중반을 넘긴 <메리대구 공방전>에는 사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피 말리는 ‘쩐의 전쟁’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동시간 시청률 최하위, 라는 가슴 아픈 현실을 목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떨어져만 가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메.대.공.의 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든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일단 한번 맛을 보면, 쉽게 벗어 날 수 없는 <메리대구 공방전>의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메리와 대구다.
명랑액션무협만화의 외투를 입은 스크루볼 코미디의 부활. <메리대구 공방전>의 두 남녀는 낯간지러운 사랑싸움이 아니라, 진짜 싸움을 한다. 피 말리는 고기판은 ‘죽음의 고스톱판’으로 이어지고, 이후 피자 대짜 한 판을 둘러싼 애미에비도 몰라볼 배신의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마찰은 멜로드라마 주인공들이 마주치고 만나고 싸우고 위로 받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예정된 수순 중 하나일 테지만, 메리와 대구의 ‘공방전’은 과정 그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만담과 무협의 경쾌한 핑퐁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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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연애시대>의 ‘지호’ 이후 좀처럼 몸에 맞는 옷을 찾지 못하고 있던 이하나는 비로소 맞춤옷을 입은 듯 브라운관 속을 횡대, 종대로 자유롭게 활보하고, 지현우는 ‘지PD’라는 훈훈한 꼬리표를 ‘대구’라는 꼬질꼬질한 이름표로 기꺼이 바꿔 달았다. 왕빛나의 꿈꾸는 말투는 철없는 부잣집 성형미인의 무게를 재수 없음보다는 귀여움 쪽으로 옮겨놓았고, ‘선도도진’ 이민우의 각 잡힌 등장은 <카이스트>의 이민우를 잊지 못하는 팬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귀환이다.
어떻게 보면 느슨해 보이는 이 드라마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허투루 소비되는 대사나 연출이 없다. 행간의 자유를 주고, 그것을 누구보다 알차게 채워 넣는 김인영 작가의 대본과 고동선 감독의 연출에는 메리와 황제수퍼 사장님만큼의 신뢰와 믿음이 오간다. 또한 많은 주, 조연 캐릭터들이 쉴새 없이 쏟아내는 몸 개그와 애드리브 역시 통제되지 못한 채 날뛰기 보다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허를 찌르는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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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메리와 대구 그리고 소란에게는 전사가 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의 부모의 이야기다. 우악하고 독한 메리의 모친이 갑자기 여린 표정을 짓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오 솔레 미오>의 선율, 수선화의 향내와 함께 추억하는 ‘리끼박’(이영하)이다. “평생 그리워하기에 좋은” 그 남자는 30년 전 동방서커스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쳐보던 중 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오성자 여사(이혜숙)는 평생 그를 가슴에 묻은 채 살고 있다. 이렇듯 봉인 된 줄만 알았던 사건과 기억들은 죽은 줄만 알았던 리끼박의 의문스러운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30년 전 실연한 오성자를 거두어 결혼한 메리의 아빠 황도철(기주봉)은 옛 남자의 등장에 긴장하고, 30년 전 공중곡예 줄을 끊은 피에로, 그러나 이제는 권세가가 되어버린, 소란의 아빠 이세도(이기열)의 눈가는 더욱 “그늘지고 춥게” 변한다.
플래쉬백으로 등장하는 ‘동방서커스’의 풍경은 판타지와 비극, 상상력이 뒤섞인 팀 버튼의 그것과 닮아있다. 물론 리끼박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는 후반이 되어야 알게 되겠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 마음에 담아두어 자신을 때리지 마라”는 리끼박, 혹은 ‘풍운’의 전언은 당신의 등장이 단죄나, 복수를 위함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남산과 북촌에 사는 그들의 드라마
원작소설에서 ‘대구’라는 걸쭉한 지역 색을 버리고 이 드라마 제작진은 남산과 북촌의 한옥마을이라는 공간을 택했다. 이는 ‘1, 2회 해외촬영+마지막 회 해외촬영’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으로 자리잡은 미니시리즈 로케이션의 풋풋한 반전이다. 과거 서울의 중심이었던 사대문안의 사람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재개발과 뉴타운 건설 등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황제수퍼의 유통기한 지난 식빵처럼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있다. 춤바람 나서 가출한지 3년 된 마누라를 찾기 위해 전국 카바레를 돌다가 어느 순간 “뤼~둠감”이 온몸을 덮쳐버려 춤의 노예가 된 ‘화(ㅇ)제수퍼’ 사장 최황제와 그의 문제 많은 딸 최비단, 국가재산인 볼펜을 훔쳐오는 매우 소극적이고 점잖은 방식으로 국가에 반항하는 9급 공무원인 메리 아빠와 말보다는 손이 앞서고 금전관계에서는 핏줄도 없는 메리 엄마, 변강쇠 같은 남자를 꿈꾸지만 외롭게 장작질을 이어가는 통닭집 여사장 변강미등 대구와 메리를 둘러싼 혹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저 다양한 색깔의 병풍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 앞으로 나와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 동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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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을 했어요? 그럼 이제… 동지가 아닌…건가?”
소란의 여동생 아문의 보디가드로 첫 출근 하던 날, 아침 운동 나온 대구를 만난 메리는 그의 취직 소식을 듣고 멍하니 이렇게 읊조린다. 메리에게 도진이 아니라 대구가 더 신경 쓰였던 이유, 대구에게 메리가 더 마음이 쓰였던 까닭, 그것은 단순히 남녀의 화학적 이끌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저 사람이 어쩌면 내 ‘동지’일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인지였다. 가난한 백수라는 사회적 처지가 아니라, 쿨 함을 강요하는 세상, 이 냉정한 강호에서 아직 꿈이라는 철 지난 가치를 믿는 아날로그적인 종족들이 서로를 식별하는 어떤 냄새일지도 모른다. “맨날 티격태격하면서도 왜 안면 트고 지내는지 알아? 바로 동병상련이기 때문이야”
<메리대구 공방전>은 메리와 함께 코러스 뛰는 여자(노현희)의 입을 빌어 이 드라마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심하게 흘린다. “무대는 다 똑같애, 모든 무대는 다 거룩한 거라구” 그렇게 이 드라마는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인생들을 향해, 오지 않은 다음 장을 걱정 하지 말라고, 너의 무대도 거룩한 것이라고, 지금 서 있는 이 장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현명한 노인처럼 다독인다.
어쩌면 “열정은 재능을 능가해! 언젠가 될꺼야!” 라는 메리와 대구의 외침은 순진함보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의 무지한 낙관보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자기세뇌다. 세월이 흘러 결국 그들의 열정은 재능을 능가하지 못 할 수도 있고, 영영 무엇도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지던 간에 그 시절, 메리와 대구가 함께 장작구이 통닭을 뜯고, 술에 취한 밤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하고, 더러운 담요를 덮어주고, 도라지와 파스를 나누고, 질투하고 사랑했던 사실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고된 시절을 함께 버텨준 것만으로 메리에게 대구는 대구에게 메리는 이미 잊을 수 없는 동지가 된 셈이다.






















































